카이스트신문 2020년 11월 3일(제482호) 사설
더 넓은 차별금지 논쟁을 기대한다
민주화 이후 시민의식이 강화되면서 소수자 차별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대학가를 중심으로 소수자의 인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문제의식 하에 차별금지에 대한 논쟁이 활발히 벌어졌다. 우리 학교 총학생회도 지난 7월 총학생회 명의로 차별금지법의 조속한 제정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에 서명하기로 의결한 바 있다. 차별금지라는 대의에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현실에서 벌어지고 있는 차별금지에 대한 논쟁은 본지의 기획기사(3면)에서 분석하고 있듯이 결국 다양한 유형의 사회적 소수자 중에서도 성소수자 문제에 집중되어 있다. 성소수자 문제가 유달리 논쟁의 대상이 되는 이유는 개인의 정체성, 가족의 의미 등 광범위한 가치의 충돌 양상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성소수자의 인권은 범세계적으로 중요한 정치적 사안으로 대두되고 있으며 우리 사회에서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이슈로 등장하였다. 우리 학교만 보더라도 학생사회 내에서 성소수자를 둘러싼 다양한 갈등이 표출되고 있다. 하지만 차별금지법 논쟁이 성소수자 인권에 집중되면서 차별금지라는 원칙의 근본적 문제의식이 퇴색되고 있다는 점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차별금지법을 지지하는 측에서는 사회적 소수자들이 동등한 시민으로서 평등한 권리를 보호받아야 한다며 시민적 연대를 강조하고 있고, 반대하는 측에서는 차별금지 정책이 과도할 경우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개신교계의 일부를 중심으로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금지가 기독교의 교리와 갈등을 일으키며, 차별금지법이 광범위하게 적용될 경우 종교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점을 강조하면서 차별금지 문제가 종교의 자유와 시민적 권리의 충돌로 비화되었다. 하지만 결국 차별금지의 본질은 다수자의 소수자에 대한 차별, 사회적 강자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소수의 권력자에 대한 다수의 투쟁을 통해 발전되었다. 이런 점에서 볼 때 민주주의는 소수의 위정자가 아닌 다수의 국민의 권리를 보호하는 제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작동하는 민주주의가 다수결이라는 의사결정의 원칙에 입각해 있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다수의 횡포로 귀결될 위험성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성숙한 민주주의는 결국 다수결로 보호할 수 없는 사회적 소수자의 권리가 침해되지 않도록 이들의 권리를 보호하는데 관심을 두고 있다. 다수의 자유, 강자의 자유는 소수의 자유, 약자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행사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볼 때 성소수자 뿐만 아니라 국적과 고용형태에 따른 차별금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국가간의 교류가 늘어나고 정규직 중심의 고용계약이 점차 줄어드는 상황에서 외국인 노동자와 비정규직의 비중이 늘어나고 있지만, 이들도 성소수자와 마찬가지로 사회적 약자로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여있다. 성소수자에 대한 차별 논쟁이 사회적 약자의 권리에 대한 관심으로 확장되면서 사회적 차별을 극복하는데 일조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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